서울 유명 사립대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취업 준비생 김모(27)씨는 최근 월세 38만원짜리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새집 환경은 그동안 살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원룸보다 열악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가 준비하던 주요 대기업 채용은 코로나 사태로 줄줄이 일정이 연기됐다. 사실은 공채가 당장 재개돼도 문제다. 김씨 토익(TOEIC) 성적은 작년 말로 유효기간(2년)이 지났다. 월 2회 진행되던 정기 토익 시험 일정은 2월부터 계속 연기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해 입사(入社)의 그날까지 버티려 했지만, 이마저 실패.


김씨는 "빵집·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경력을 요구하더라"며 "파리바게뜨 면접을 보러 갔더니 대기자 명단에 수십 명이 적혀 있었고, '경력이 없다'고 했더니 그걸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450만원 남은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면 부모님이 계신 울산 본가로 내려갈 참이다.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에 올라온 국내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 공고 등록 건수는 작년 3월 대비 44.4% 줄었다. 사람인 관계자는 "통상 채용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기가 3월인데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채용 절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의 극단적 침체로 아르바이트 구직도 어렵다. 올해 2월 7일부터 1개월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올라온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건수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7.4% 감소했다.

취업 준비생 임모(27)씨는 "취업 스터디마저 코로나 여파로 자주 모이기 어렵게 되면서 매일 집에만 머무르다 보니 취업과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2월 취업 준비생 이모(27)씨에게 졸업 후 1년 만에 최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유명 IT 기업 채용 서류 심사에 합격, 면접 대상에 오른 것이다. 면접 일은 2월 하순.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면접은 무기 연기됐다. 콘텐츠 제작과 관련한 다른 비슷한 수준 기업의 채용을 알아봤지만, 대부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기다리는 사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씨는 자취 중인 8평 원룸 월세 50만원을 나눠 내기 위해 룸메이트를 들였다. 이씨는 "코로나로 취업 준비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아 조금이라도 아끼려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 김씨는 토익 성적이 960점이고 한국사자격증(1급)과 IoT 허브 스타트업 창업 경력이 있다.

이씨처럼 그나마 취업 준비에 필요한 자격증 준비가 끝난 경우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제주도에 사는 대학생 김모(24)씨는 올 초 계획했던 '취업 준비 일정표'가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올해 공기업 서류전형을 위해 준비 중이던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자격증, 토익 시험이 줄줄이 연기돼서다. 5월 23일에 잡혀 있던 한국사 시험은 6월 27일로 미룬다는 공지가 나왔지만, 나머지 시험 일정은 감감무소식이다. 김씨는 "이러다 취업은커녕 자격증 시험도 못 보고 상반기 공채를 허망하게 날릴 판"이라고 했다.

공공기관·공무원 시험도 재개가 불투명하다. 코레일은 3월 21일이었던 필기시험을 이달 25일로 미뤘다가, 다시 6월 14일로 연기했다. 필기시험 대상자만 4만3263명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도 3월 1일로 잡아둔 필기시험을 4월 4일, 5월 16일로 두 차례 미뤘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상반기 채용 계획을 아직 발표하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도 줄줄이 미뤄지는 중이다. 1만2595명이 지원한 국가직 5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옛 행정·외무고시) 필기시험(2월 29일)과 18만5203명이 몰린 국가직 9급 필기시험(3월 28일) 모두 일정이 연기됐다. 1년 차 행정고시 준비생 노모(23)씨는 "4월 이후 시행된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5월도 어려울 것 같다"며 "의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취업은커녕 졸업도 불투명하다. 서울대 경영대와 서강대·성균관대·단국대 등 여러 대학이 '졸업 자격'으로 영어 자격증 시험인 텝스나 토익 성적 제출을 요구한다. 토익은 2월부터, 텝스는 지난달 21일부터 계속 연기되고 있다.

본인 능력과 무관하게 '백수'가 됐거나, 될 위기에 처한 취준생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대거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자영업 사장님'들은 이미 더한 위기 상태다. 코로나 사태가 불붙기 시작한 이후 1개월간 '알바몬'에 올라온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건수는 서비스직이 26.1%, 외식·음료업종 일자리는 25.2% 줄었다.

그러니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서울 성동구 커피숍 '커피레트로'를 운영하는 연혜수(32)씨가 이달 9일 알바 1명을 구한다는 공고를 내자 사흘 새 100여 명이 몰렸다. 연씨는 "구로·강북·관악구 등 멀리 사는 사람도 많았고, 문자로 구구절절 '가정 형편이 어렵다' '오래 일하겠다' 등 사연을 적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연남동 유명 이탈리안 Y레스토랑은 이달 초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를 냈다. 주 5일 출근해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월급 220만원(세전)을 받는 자리였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른 통 가까운 전화가 쏟아졌다. 오너 셰프는 "재작년과 비교하면 2~3배 수준으로 몰린 것"이라며 "하루 만에 맘에 드는 취업 준비생을 뽑고 공고문을 내렸는데, 그가 말하길 '수십 번 낙방했는데 뽑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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